고종황제의 조선제국(朝鮮帝國) 당시였던 1910년 8월 29일의 [국치일]을 마지막으로, 일본의 국수주의 군국정권 지배자들이 무력을 앞세워 조선을 침략 강점했다.그와 동시에 조선의 영구 지배 흉책을 획책하게 된 것이 소위 ‘조선총독부’였다. 이들은 경복궁의 궁전 정문 [광화문]과 그 양면의 성벽들을 철거하는 등 궁궐 건물들을 함부로 헐어낸 자리에다 일인들의
일제는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을 강제적이고 일방적으로 맺은 ‘합방 조약’을 내세워 조선 땅을 강탈했다. 이들은 1906년에 설치했던 이른바 ‘조선통감부’를 '조선총독부'로 이름을 바꾸고 총독부 초대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를 보내왔다.그러자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1910년 10월 1일부터 관보(官報)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데라우치 마사타
일본 왕실은 매년 11월 23일, 천황이 직접 한신(韓神) 제사를 모시고 있다. 이 사실은 필자가 지난 2002년 7월 11일과 2013년 4월 21일에 직접 도쿄 천황궁 안의 제사 음악당인 에 직접 들어가서 제사 음악 실연을 3시간 동안 관람함으로써 두 번에 걸쳐 확인했다.한신(韓神) 축문은 다음과 같다. 그런데 [어신악](御神樂, 일본왕실 제사
일본의 개국 역사를 면밀하게 검토한다면 “한국인과 일본인은 모두 단군의 후손이다”는 것을 이제부터 우리는 바르게 인식할 일이다.일제는 1945년 8월 15일에 제2차 세계대전 태평양전쟁에서 패전했다. 맥아더 장군의 미군정하 국가가 된 것이다. 이에 저명한 사학자, 민족학자, 인류학자 등이 밝힌 일본 민족사 연구를 당당하게 공개했다. 좌담회와 연구회, 토론회
“일본의 개국역사는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서 사실은 우리 한국인들보다 일본인들이 더 궁금해한다면 독자 여러분은 “어째서?”라고 고개를 갸웃거릴 줄 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역대 일본의 위정자들이 고대 일본 역사책을 제 비위에 맞도록 번번이 뜯어고쳤기 때문에 일본의 식자들도 일본 고대사에 대해 항상 회의에 차있는 것이 현실이다. 현
모토오리 노리나가는 [고사기] 연구를 하면서 한국과 중국 등 외래 사상이며 유교를 철저하게 배척했다([直毘靈]). 그는 신화시대며 고대로의 소위 복고(復古) 사상을 외치면서 고문서와 금석문 등 고고학적인 연구로 저명한 고증학자(考證學者) 토테이칸(藤貞幹, 1732~1797)의 저술([衝口發])을 격앙하여 능멸하며 일방적으로 배격 비판했다([鉗狂人]). 모토
지난 제2회 연재에서 “삼족오”(三足烏)가 우리 조선 상고 단군시대 민족의 ‘해의신’(日神)의 표상이라는 것을 고증하는 사진들을 밝혔다. 특히 일본 천황이 등극할 때 입었던 이세신궁 천황가 큰사당에서 대상제(大嘗祭) 천신 제사 때 입은 붉은 윗도리 제복(祭服) 왼쪽 어깨위의 삼족오와 오른 쪽 어깨 위의 달신의 표상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제 병합한 지 100년을 맞은 치욕의 8월29일에 이번 두 번째 원고를 쓰고 있다. 아직도 일본은 그들이 저지른 불법 침략 행위를 반성하지 않고 터무니없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어 우리 국민을 분노시키고 있다. 그들이 언제까지 강제 병합을 버틸 것인가. 그럴수록 우리는 우리조상이 일찍이 상고시대 일본 땅에 공고하게 심었던 우리 국조 단군왕
필자는 우리나라 ‘경부 고속도로의 날’ 7월 7일 아침에 이 졸고를 쓴다. 이날 신문 방송은 “단군(檀君) 건국 이래 우리나라 최대의 공사 경부고속도로 준공 40주년”을 기뻐했다. 그러나 선진국 운운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우리 역사를 이모저모 또렷이 기억해야 한다. 서울대학교에서는 2014학년도 입시부터 응시생이